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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대한 구전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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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탑사

마이산 탑에 대하여 예전부터 있었다는 구전과 기록이 상당수 있다. 이갑룡 처사와 동시대에 살던 분들이 이갑룡 처사 이전에도 그 자리에 탑이 있었다고 구술했다는 전언이 있으며. "천지탑 부근은 숲이 너무 우거져 대낮에도 컴컴해서 무서워 접근도 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숲 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고, 몇 년 뒤 타지로 일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천지탑이 드러나 있었다."고 구술한 분도 있다. 1928년에 송도성이란 분이 쓴 <마이산행감(馬耳山行感)>이라는 기행문이 있는데 천지탑을 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數百 人도 運搬하지 못할 巨石을 들어서 塔의 中層을 造成하였다는 말."
"보기만 하여도 精神이 어지러울 馬耳山 中層에 가서 造塔한 事實과 巨石을 運搬하야 塔의 中層을 構成한 證據는 目前에 나타난다."

위 기록을 보면 당시까지는 탑의 중충(中層)까지만 보이고 상륜부는 아직 없다는 뜻이고, 수 백인도 못들 거석을 혼자서 운반 조탑 하였다는 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수긍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⓵ 마이산 탑사 부근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래서 수풀이 우거졌다.
⓶ 수풀 속에 천지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
⓷ 이갑룡처사가 들어와 1910년경 아래쪽 탑들을 손보거나 쌓기도 하고 이후 우거진 수풀들을 제거하여 천지탑을 드러내 놓았다.
⓸ 그러나 1928년까지는 천지탑의 상륜부를 만들지 못하였다.

또 이 탑들이 이갑룡 처사보다 선행한다는 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하립(1769~1831)이라는 이 지방 문인이 쓴 《담락당운집(湛樂堂韻集)》에 마이산 속에 탑이 여럿[重重] 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속금산(束金山)속에 탑이 줄줄이 서 있는데 [束金山裡塔重重]
단풍나무 숲에서 저녁 종소리 듣네 [紅樹陰中聽晩鍾]
오래된 절이라 볼 것은 오로지 금불상뿐 [古寺惟看 金佛像]
바윗길 험하여 세간사람 발길 없네 [岩危不到 俗人筑]
마음 씻고 보니 三千界에 꽃 비가 가득 [洗心花雨三千界]
눈을 드니 구름노을 제일봉에 감도네 [聘目雲霞第一峯]
진경(眞景)이라고 자랑하는 늙은 스님 말을 듣고 [白衲爲言 眞景好]
신선의 자취 찾아 온종일 산속을 헤맸네 [山行盡日 覓仙踪]

이갑룡(1860~1957)처사보다 90여 년 전에 살았던 분이 마이산 속에 탑이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을 기록했으니 그 탑들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었을까? 앞서 기술한 대로 불탑(佛塔)은 대개 사리탑으로 하나의 사찰에 여러 개를 조성하는 사례가 없으니 금당사 등 사찰에 있는 탑을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때는 모두 석탑이었으니 당시에 탑이 있었다면 지금도 마이산 어디엔가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그 탑들은 바로 현재의 마이산탑 일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마이산탑이 이갑룡 처사 시기보다 적어도 9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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