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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사&나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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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사

금당사(金塘寺)는 마령면 동촌리 41번지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기록에 따라 금당사(金堂寺)로도 되어있다. 현재의 금당사는 1675년(숙종 1)에 지금의 자리에 새로 세워졌는데 창립연대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 백제 말경 (AC650~700) 무상화상과 김취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과 통일시라 시대(814년)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설이다. 창건에 관한 주장이 이처럼 다른 것은 사지(寺誌)가 없어 창건 시기를 뚜렷이 내놓지 못해 통일신라 시대 중국 승 혜감 창건설이 공론이었다. 그후 《삼국유사》 3권-3 흥법(興法)편에 '보덕(普德)화상의 제자11인 중 무상(無上)화상은 제자 김취(金趣) 등과 더불어 금동사(金洞寺)를 창건했다'는 기록에 의거 (이 금동사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령지역에 금동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사찰의 역사를 한층 앞당기려고 이 부분이 추가되었을 것이나 이 주장은 기록이 미비하고 특히 소재 지역이 뚜렷하지 않아 무리가 따른다. 그보다는 금동사(金洞寺)와 현존하는 금당사(金塘寺)가 어떤 관련이 있느냐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금당사

간행연대 미상의 구《진안지》에 고금당(古金堂)이란 기록이 보인다. 이 고금당은 현 금당사에서 서쪽으로 약 350m 나옹암으로 올라가는 초입 지점에 그리 넓지 않은 밭이 있는데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고금당이라 부르고 있으며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지금도 조선 시대의 기왓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봐서 이곳에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곳도 진정한 고금당이라고 하기는 미심쩍다. 고금당은 여기에서 한참을 더 올라간 암벽에 있던 쇄암사 또는 혈암사라든가 나옹암을 가리키는 말이라는데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현 금당사에는 고려 시대 것으로 알려진 석탑이 있는데 옥개석(屋蓋石)은 3층분만 남아있으며 탑의 부재(部材)들이 없어졌거나 잘못 놓여 있다.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마이산내 사찰의 흥망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불탑이란 대개 사리를 봉안하는 것으로 사찰에서는 불상과 더불어 중요한 경배와 신앙의 대상이다. 이런 불탑의 옥개석이 2층 정도나 분실되고 기단부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은 상당한 기간 방치되었음을 뜻한다. 즉 이 불탑은 옛 사찰이 퇴락하고 그 자리에 방치되었던 것을 현 금당사를 중창하면서 수습하여 옮겨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사실상 옛 금동사가 현 금당사로 법통을 이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이전한 석탑 외에는 사찰의 위치나 건물, 불상과 괘불탱은 현 금당사 중창 이후(중창보다는 창건)만들어진 것으로 사찰의 법통이나 역사적 맥락이 이어진 자취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금당사의 선행사찰은 금동사가 분명해 보인다. 그 이름이 나중에 쇄암사, 또는 혈암사로 불렸어도 실제는 바위굴 속에 건립한 수행암자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지금 금당사에는 극락전, 지장전, 괘불각, 삼성각, 요사채가 있다.

금당사

나옹암(懶翁庵)

마이산 금당사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직선거리 약 900여m 지점에 《진안지》에서 말한 금당대(525m)가 보인다. 이 금당대 아래 암벽에 넓이 약 10평 남짓한 굴이 뚫려있는데 수행굴 또는 나옹암으로 불리는 굴이다. 이곳을 나옹암으로 부르는 이유는 나옹선사가 한때 이곳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실제로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기보다는 명승(名僧)에게 사찰의 역사를 연관시키던 당시의 관행에 따라 뒤에 삽입된 기록으로 보이므로 나옹의 체류여부는 신빙성이 부족하다.
이곳이 예전부터 암벽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절간으로 사용했다고 전하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진안지》에 실려 있는 김종직(1431~1492)의 마이산 시에 "이틀 밤을 쇄석암(碎石菴)에 머물면서…….운운" 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 쇄석암(碎石菴)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쇄석암은 혈암사와 쇄암사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하겠다.
당시 진안 현감이었던 민인백(閔仁伯, 1552~1241)의 문집에 기재된 마이산 편에는 "내가 놀러 갔을 때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사면 및 상하가 모두 돌인데 천정은 지붕, 바닥은 온돌, 네 벽도 돌로 천연이 만들어낸 곳이며 옆에 늘어서 있는 괴석들은 개개 가 특이하여 여러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둘레가 십 리가 족히 될 것인데 참으로 기관(奇觀)이다."라고 하여 굴속에 있는 암자를 그리고 있다. 이 기록에서도 다른 절이 있다는 언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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